1993년 케이처는 윌킨스와 함께 주의력결핍장애(ADHD)인 소년들을 상대로 공공 연구를 수행했다. 그들은 소년들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한쪽에는 반려동물을 돌보게 하고 다른 한쪽에는 하이킹, 카누 경기, 암벽 등반과 같은 자연 체험에 참여하도록 했다. 그 결과, 양쪽 활동에서 모두 유의미한 치료 효과가 나타났으나 반려동물을 돌보는 집단에서 더욱 강하고 지속적인 효과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이로써 연구자들은 주의력결핍장애를 가진 소년들이 반려동물과 정서적 유대를 형성할 때 스트레스 저하, 사회적 유대관계 및 공감력 향상, 학교 적응 능력과 학업 성취도가 높아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애완동물은 우리 주위에 있으려 하며 관심을 갈구하고, 반갑게 맞아주며 고통을 나누려고 한다. 그들이 드러내는 공손한 표정 또는 소유욕은 우리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보여주며(…) 그로 인해 사람들은 사랑과 존중과 존경의 감정을 받는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가치 있고 필요로 하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을 즐긴다. (…) 우리의 신체적 건강, 자신감과 자부심, 생활 스트레스에 대한 대응력은 이러한 소속감에 의지하고 있다. 다만 애완동물은 인간을 보완하고 증강시킬 뿐 인간관계의 대용물이 아니다. 그들은 인간 생활에 새롭고 특별한 차원을 추가시킨다.


그러나 동물에 대한 정서적 애착이 지나치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애완 동물에 대한 세펠의 방어적 언급은 현대사회의 지나친 반려동물 옹호를 겨냥하는 비판적 의견을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즉, 현대사회에서 인간관계의 결함 또는 자연으로부터 소외감을 보상받으려는 경향 때문에 애완동물에 과도하게 집중한다는 견해를 어느 정도 수렴한 것이다. 생태학자이자 철학자인 폴 셰퍼드는 이러한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강하게 언급했다.


'반려동물'이라는 다소 친밀하고 완곡한 표현은 무기력한 사회에서 목발에 의지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다시 말해 애정을 쏟을 생명체의 대용물이라고 생각한다. (…) 여기서 우려되는 것은 동물들은 인간 아닌 생명체의 시선을 갈구하는 사람들을 위해 멍청하게 손을 핥아주거나 깨무는 운명을 타고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깊고 원형적인 욕구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 관점은 우리의 정신 발달에서 야생동물이 애완용으로 대체되는 효과에 대한 것이다. (…) 동물과 그들의 표현은 인간 정신생활의 필수요소를 구성한다. (…) 야생동물 군이 유전적으로 결함이 있거나 겉으로 식별하기 곤란한 종으로 일부 대체된다면 그들의 손상된 지각이 인간의 자기인식 능력을 저하시킬 것이다.


반려동물을 비롯한 자연에 대한 애착은 기능적으로 또는 역기능적으로 발현될 수 있다. 우리가 무관심하거나 하찮은 듯한 태도로 자연을 대하거나 과도한 유대를 가지려 할 때는 역기능이 발생할 것이다. 

(…)

다른 생명 또는 풍경과의 정서적 관계는 고민이 있거나 외롭거나 병약한 사람들에게 기운을 불어넣는 효과를 지닌다. 인간은 모든 연령대에 걸쳐 특별한 생명체나 장소(개, 고양이, 말 또는 해변, 온천, 산장 등의 자연 요소)를 통해 치료 효과를 좇아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때로 그러한 유대감은 사람들과의 관계보다 덜 복잡하다.

자연에 대한 애착이 우리의 건강과 발달에 도움이 된다면, 과연 그것이 자연보호의 목적이 될 수 있을까? 일부 회의주의자들은 그러한 애착은 미미하게 자연보호에 관계되긴 하겠지만 오히려 자연에 해로운 작용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판은 멸종 위기, 화학적 오염, 기후 변화와 같은 도전에 대해 정서적 접근이 아니라 객관적이며 기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자연에 대한 지배 욕망으로 인해 종종 엄청난 환경적 훼손을 야기하는 현대의 산림 관리는 어떨까? 상업적 목적으로 산림을 정복하려는 성향은 특히 나무에 대한 서구적인 태도와 연결된다. 린 화이트는 나무의 권리에 대해 아무 의식도 없이 개발을 진행한다는 것은 나무를 물리적 사물로 보는 태도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나무를 생명체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물에 비해 특별한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를 뜻한다. 모든 나무는 다 똑같다는 인식이 대부분이며,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넘어서는 도덕적 고려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전 주지사의 발언이 그러한 인식을 대변한다. "한 그루의 레드우드를 보았다는 건 모든 레드우드를 본 것과 같다." 영화 「아바타」에 등장하는 사업가는 특정 나무를 지키려는 이들의 모습에 이렇게 반응했다. " 저 인간들은 도대체 왜 저러는 거지? 나무는 단지 나무일 뿐이야."

이러한 태도는 삼림을 그저 수확할 상품 이상으로 보지 않는 시선과 관행을 조장했다. 그러나 나무 한 그루를 사용하더라도 애정과 겸손을 가져야 한다. 수목 관리원으로 일하는 밥 퍼셀은 상업적 벌목에 대한 도덕적 접근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대안적 관점을 제시했다.


당신이 하루 종일 산속을 돌아다니며 나무를 하나하나 관찰하는 산림관리자라고 생각해보자. 나무들의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당신은 매일 3, 4만 그루의 나무를 관찰하고, 그중 300그루를 골라 파란색 페인트를 칠하는 일을 반복한다. 나무를 결정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은 나이, 크기, 건강상태, 토양, 방향, 경제적 가치, 경쟁력, 성장 잠재성, 야생적 가치 등이다. 당신은 산림에 대해 교육받은 지식으로 이 모든 것을 계산해야 한다. 그러나 나무에 사형선고를 하기 위해 페인트 건을 들고 있을 때 내 속의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 꼭 그래야 하나? 이 나무가 어떤 해를 끼쳤지? 이게 나와 무슨 관련이 있지? (…) 나무라고 부르는 이 독립체와 나는 무슨 관계일까? 이 행동이 정말 애정에 의한 것일까? 욕구에 따른 이기적인 행동일까?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한 땅주인의 욕심 때문일까? 페인트 건의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혹은 당기지 않을 때조차 이 과정을 수천 번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날마다 계절마다 해마다 이런 어려운 질문 속에 놓인다면 당신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다. 당신이 어떤 인간이며, 당신의 목적과 책임은 무엇이며, 자연 세계 안에서나 자연 세계와의 관계에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인가?


엄밀히 말해 산은 다른 생태계와 같이 생명을 지닌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유지되기 때문에 산은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다. 비생명체와 생명체를 합치게 하는 질량과 에너지의 원천이다.




교외 지역에 사는 어린아이를 상상해보자. 아이는 뒷마당에서 다른 새들과 모양이나 색은 다르지만 다양한 특징을 지닌 검정지빠귀blackbird와 마주친다. 아이는 새가 털을 가진 포유류, 비늘이나 뼈와 같은 단단한 껍질을 가진 동물과 유사하며, 곤충이나 벌레들이 무척추동물과는 크게 다름을 안다. 범위를 조류로 제한해보면, 아이는 검정지빠귀가 학이나 오리, 도요새나 바닷새 같은 조류와 기본적으로 다른 명금류鳴禽類, songbird 라는 것을 인식한다. 다른 동물과 식물, 지질학, 기상, 물, 풍경 그리고 자연의 모든 것에 대해서도 그와 유사한 행동을 수행한다. 분류하고 구분하며 명명하는 이 모든 과정에서 아이는 언어능력이 발달되고, 생각하고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얻는다.

현대사회에 사는 아이는 대개 모든 시간을 실내에서 지낼 것이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것이고, 주중에는 50시간이 넘도록 텔레비전 시청과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에 빠져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러한 활동에도 자연의 형상화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여행은 그에게 새로운 기술을 가르쳐주었다. 지도를 읽고, 나침반과 GPS를 사용하고, 야외에서 요리하고, 하이킹과 등반을 하고, 캠핑하고, 동식물을 구별하고, 별을 보고, 야생에서 식재료를 채집하고, 제물낚시나 사냥을 배우게 했다. 이러한 기술은 도시의 삶과는 거의 관계 없지만 그는 기술을 배울 때 만족감과 더불어 자신에 대한 확신을 얻었고 독립심도 느낄 수 있었다.

(…)

그 순간 그는 이러한 소리와 광경, 생물체들과 떼어낼 수 없음을 느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창조물, 바람, 나무, 생물체, 물 구름, 심지어 먼 우주와 소통하는 감정을 느꼈다. 개체로 분리된 그는 의미 없는 존재이며, 시공간을 따라 함께 여행하는 다른 것들과 섞여 거대한 공동체를 이루었음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돌봄 받고 있다는 느낌에 이어 예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평안에 도달했음을 느꼈다. (번역이 좀ㅎ)












보통은 본문과 관계없거나 지루해 건너뛰는데

서문부터 마음에 들었다.


휴머니티란 인간만이 이룬 업적을 다루는 것이 아니며 

인간은 다른 생명과 마찬가지로 자연 속에 존재하며 교류하며 살아가고, 살아가야 하고

자연은 생명이 모여 이루는 것이니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좋았다.

이야기 흐름이 설득력 있고 좋았음...

인간/자연 한 쪽만 극단적으로 몰고가지 않고 균형있게 풀어나간다. 편안함.


정말로 좋았던 것은 두번째 구절임

공원 나무를 아무렇지 않게 자르고, 올림픽 경기장 짓느라 몇백년 된 숲을 베어내고, 태양광 발전소를 짓느라 산을 밀어버리고, 지구온난화가 거짓이라는 인간들 보면 빡친다. 도대체 뭘 믿고 아무 말이나 막 뱉는 것인지 모르겠음

by 하완 오늘의 문구 2018. 11. 2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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