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9.11 테러에서 노르웨이 테러까지, 무엇이 인간을 극단주의로 몰고 가는가? 

예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고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었지만, 신념에 주린 대중은 그렇지 않다. 어떤 주의(ism)나 이념(ideology)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인생과 우주는 하나의 단순한 공식과 같다. 자신이 절대적 진리를 소유했다는 확신은 누군가를 배타적으로 규정하면서 극악무도한 폭력을 낳기도 한다. 어떤 신념을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을 바치거나 수많은 무고한 시민을 살생한다. 9.11 테러나 얼마 전 발생한 노르웨이의 테러는 신념이 광기를 낳은 나쁜 예에 속한다. 이 외에도 역사 속에는 다양한 종교적?이념적 근본주의자, 극단적 테러리스트, 자살폭탄자 등이 있어왔다. 미국의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가 믿음이 너무나 두터워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 자, 맹신자(숭고한 대의에 기꺼이 목숨을 바치고자 하는 광신적 신념가)의 마음을 낱낱이 해부한다. 


눈이 멀고 귀가 먼 믿음, 맹신 현상을 낱낱이 해부하다! 

독학한 부두 노동자의 아포리즘

1940년대 샌프란시스코의 부두 노동자 에릭 호퍼는 일하는 틈틈이 글을 썼다. 대공황의 반작용으로 파시즘, 나치즘, 공산주의 등 전체주의 체제가 발흥하는 시기를 보내며 써내려간 아포리즘이었다. 1951년 ‘독학한 부두 노동자’의 첫 책은 발표되었고, 그는 이 저서로 큰 명성을 얻었다. 책이 출간된 당시 전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과 히틀러, 스탈린의 충격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냉전의 물결이 막 일어나던 차였다.

나치와 스탈린의 추종자에게는 어떠한 심리적 동기가 있을까? 나아가 어떤 이들은 왜 자기 자신을 벗어던지고 국가나 교회, 정당 따위의 집단에 광적으로 몰두할까? 호퍼는 도발적인 분석으로 광신 현상의 심리적 요인과 대중운동의 본질을 추적한다. 


이 책은 여러 대중운동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을 다룬다. 호퍼는 모든 유형의 헌신과 신념, 권력 의지, 단결과 자기희생에는 어떤 획일적인 속성이 있다고 말한다. 광신적 기독교 신자, 광신적 이슬람교 신자, 광신적 민족주의자, 광신적 공산주의자, 광신적 나치가 서로 다른 것은 분명하지만, ‘광신’이라는 점에서 한 부류로 취급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대중운동’은 반체제 저항운동뿐만 아니라 인간이 집단을 만들어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든 운동을 아우른다. 초기 기독교 운동, 종교개혁 운동,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나치즘, 일본의 근대화, 시오니즘 운동 등을 포괄하는 의미다. 


태동기 대중운동에 참여하는 많은 이들은 자신의 삶이 순식간에 극적으로 변한다는 전망에 이끌리기 쉽다. 대중운동의 지도자도 이러한 대중의 열망을 꿰뚫어보고 보잘것없는 현재를 극복하면 영광스러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대중을 선동한다. 이러한 장밋빛 미래에 이끌리는 이는 주로 좌절한 사람이다. 현재의 자신을 경멸하는 좌절한 사람은 자기의 삶이 통째로 바뀌는 급진적인 변화를 선호한다. 

변화를 갈망하는 이러한 좌절한 이들의 심리 상태 때문에 모든 초기의(태동기) 대중운동은 좌절한 사람들한테 호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호퍼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자신이 쓸모없다는 자기혐오에 사로잡힌 사람일수록 자신에게서 벗어나 좀 더 완전하고 숭고해 보이는 무언가를 추종하기가 쉽다. 숭고한 대의에 에너지를 쏟음으로써 자신의 하찮은 삶, 망가진 인생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다. 실로 좌절한 사람에게는 자신이 열정적으로 매달릴 어떤 대상이 필요한 것이므로 그것이 종교든 사회혁명운동이든 민족운동이든 가리지 않는다. 따라서 호퍼에 따르면 광신적 공산주의자가 광신적 애국주의자나 광신적 가톨릭 신도로 바뀌는 일은 이치에 맞다. 맹신자에게는 대의명분이나 이상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매달릴 수 있느냐 여부에 있다.


따라서 사람이 어떤 신념이나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일이 아주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자기혐오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을 거부하고 하나의 조직에 완전하게 하나된다. 그는 교회나 국가, 정당 같은 신성한 조직의 품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열정과 힘을 경험한다. 그러므로 조직이나 대의를 위해 목숨을 희생하는 일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다. 조직이 그리는 영광스러운 미래를 위해 폭력을 동원해야 한다면 더 없이 무자비해질 수도 있다. 이렇듯 개인이 광신자가 되는 과정을 영리하게 추적한 호퍼의 책은 시공을 초월하여 극단적 테러리스트, 자살폭탄자의 심리를 이해하는 지침서가 되고 있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호퍼의 목소리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책은 단순히 대중운동론을 다루는 책이 아니다. 인간 내면과 행동을 명석하고 압축적으로 분석해낸 심리서이자, 대중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동기와 심리, 참여자의 유형과 내면 등을 추적한 사회철학서이기도 하다. 특히 군대, 증오, 설득과 강압, 지식인, 소수자 등을 논하는 호퍼의 혜안은 아주 빛난다. 호퍼는 마지막 장에서 대중운동의 발단과 성숙기까지를 살피며, 대중운동이 제대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세 유형의 사람이 발전 단계에 따라 각각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중운동의 토대를 닦는 것은 지식인, 대중운동을 실현하는 것은 광신자, 대중운동을 굳건히 다지는 것은 실천적인 행동가라야 한다고. 나치즘이 재앙으로 끝난 것은 히틀러라는 광신적 지도자가 성숙기까지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호퍼는 좋은 지도자의 예로 링컨, 간디, F. D. 루스벨트, 처칠 같은 지도자를 꼽는다. 이들은 히틀러, 스탈린, 루터, 칼뱅과는 달리, 좌절한 영혼을 대중운동의 재료로 삼지 않았다. 이들 “지도자의 자신감은 인간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며, 자신이 인류를 명예롭게 대하지 않는 한, 아무도 명예로울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초기(역동기 혹은 활성기) 대중운동을 촉발하고 주도하는 맹신자들에게 호퍼는 일종의 혐오감을 가지고 접근하는 듯하지만, 대중운동이 정체된 사회를 각성하고 혁신하는 요인이 된다고 강조한다. 역동기 대중운동은 본래의 목적이 얼마나 숭고했건 간에 크든 작든 해악을 남긴다. 호퍼는 역동기 대중운동이 지나치게 긴 것은 좋지 않으며 바람직한 지도자는 간디와 같이 역동기를 언제 끝내야 하는지 간파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대중운동의 목표는 숭고할 필요가 없다. “신사의 나라라는 잉글랜드의 이상”, “은퇴자의 연금 생활이라는 프랑스의 이상”은 구체적이고 제한적이다. 모호한 목표는 극단주의가 탄생하는 여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육체노동자로 일하며 평생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쉬지 않았던 호퍼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건이 역사를 만든다”고 믿었다. 자신의 독자적인 개성과 정체성을 포기하고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호퍼는 경계했다. 그는 “자신의 귀보다는 눈을 더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이미 정해진 행동 강령을 맹종하는 것이 아닌 자기의 판단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삶의 기획하는 이였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절대 진리’나 ‘기적’을 찾고 있다. 격렬한 변화의 시대에 호퍼의 목소리가 여전히 의미 있는 까닭이다.






좋은(옳은?) 말같아 다 퍼옴

요즘 말로 하자면,

아 뼈맞음




by 하완 오늘의 문구 2018. 2. 9.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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