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고통에 대해 자유롭게 묵상하다 보면, 고독한 수도자(보스의 그림에 나오는 '태만한 남자와 같은 은둔자) 멍함, 멜랑콜리아, 심지어 태만 또는 나태와 같은 죄악에 빠질 수 있다. 그 죄악은 율리시스의 탐험욕이나 철학자의 사색욕이 빚은 죄악과 정반대의 것이다. 멜랑콜리아는 부정적인 증상인데도 창조의 원천으로 주장되어 왔지만, 나태한 공허감에 빠지지 않고 명상에 계속 집중하기는 어렵다. 그 경우 탑은 장소로 전락한다. 《파우스트》 도입부에서 파우스트는 한탄한다. "철학 · 법학 · 의학 서적을 읽은 후 나는 조금도 현명해지지 않았고, 도리어 신앙의 교리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상아탑의 벽이 내 영혼을 가로막고 있다. 내가 가진 실험 기구와 문헌들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쓰레기에 불과하고, 내가 쓴 논문들은 내가 만들어 낸 허상이다. 나는 어떤 것에서도 쾌락을 느낄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의 한탄은 동시대 지식인 모두에게서 해당하는 것으로, 상아탑 속에 칩거하면 무기력증에 빠지기 쉬움을 경고한다.


   피치노는 멜랑콜리아가 널리 퍼지도록 장려하기 위해 세부적인 지시 사항도 말해 준다. 그 내용은 활발한 순례자의 태도를 삼가고 여행길을 주의 깊게 살피며, 게으른 철학자의 태도로 느릿느릿 깊은 생각에 잠기라는 것이었다. 조언도 한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곧바로 독서를 하거나 명상을 하지 말고, 최소한 30분 동안 자리에서 벗어나 몸을 깨끗이 닦아라. 그런 다음 부지런히 명상을 하되,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면 1시간 30분 정도 지속하라. 그리고 만사를 잠깐 뒤로 미루고 머리를 빗어라. 상아빗으로 이마에서 목까지 40여 번 적당히 빗어 내려라. 마지막으로, 거친 천으로 목을 문질러라. 그 다음, 2시간 정도 명상을 계속하거나 최소한 1시간 동안 공부를 해라." 피치노는 "매일 이렇게 하면, 너를 만든 신께서 너를 도와 인간들 간의 장거리 경주에서 완주하게 하고, 그의 영감이 온 세상 사람을 살아 숨 쉬게 하리라"며 마무리 짓는다.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가 학구적인 고독을 동경해 데모크리토스의 고독을 흉내 냈다. …그중 특히 눈에 띄는 사람이 몽테뉴다. 그가 연구실로 선택한 답은 전형적인 은신처였다. 보르도 지역에 있는 가문의 대저택에 딸린 4층짜리 탑은 몽테뉴의 아버지에 의해 방어용 건물에서 삶의 공간으로 탈바꿈되었다. 1층은 예배당이었고, 몽테뉴는 2층에 침실을 두었다. 3층 서재에서 책을 읽다 지치면 2층으로 내려와 쉬곤 했다. 4층 다락방에는 커다란 종이 있어 시간을 알렸다. 몽테뉴가 가장 좋아한 방은 3층 서재였다. 여기엔 원형 서가 다섯 개가 벽을 따라 놓여 있었는데, 서가마다 1000여 권의 장서가 빼곡히 꽂혀 있었다. 서재 창가에 앉으면 정원, 닭장, 뒤뜰 등 집안의 대부분이 내려다보였다. 서재에서 몽테뉴는 특별한 순서나 계획 없이 이책저책을 동시에 넘겨보았고, 대로 우두커니 앉아 상상의 나래를 펼치거나 기분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걸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생활이었다. 그는 《수상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 구석에 내 의자가 놓여 있다. 그 의자에 앉아 나는 아이들, 아내, 이웃 등 모든 사람과의 접촉에서 벗어나 나의 삶을 완전히 지배한다. 그건 순도 100퍼센트짜리 지배다. 다른 곳에서는 말로(verbally) 권한을 행사하는데, 그건 본질적으로 불순한 지배다. 집 안 어디에도 자신만의 공간이 없어, 마음만 먹으면 몰래 숨어 자아도취에 빠질 수 없는 자는 얼마나 가련한가!"

(몽테뉴 엄청 부럽군... 나도 돈 많은 백수... 날 때부터 돈 많은 백수에 건물주로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이 부르주아지!! 15세기면 난 노예로 살다 죽었을 텐데ㅎ)


   1966년 오스트리아 극작가 겸 소설가 페터 한트케는…또 이렇게 고백했다. "나에게 문학은 오랫동안 자아를 (완벽하지는 않지만) 좀 더 명확하게 바라보기 위한 수단이었다. 문학은 '내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솔직히 말해서, 문학에 입문하기 전 나는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라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러나 문학은 '그러한 자의식은 별난 것이 아니고, 심지어 주목할 만한 것이나 병리현상도 아니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문학을 하기 전까지 나는 그런 나의 자의식을 뭔가 끔찍하고 수치스럽고 음란한 것으로 느꼈다. 그렇게 생활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은 실상을 일깨워 줬다. '나는 특이한 사례가 아니며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삶을 산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 준 것이다." 피치노처럼 한트케에게도 상아탑에서 수행하는 지적 행위는 인간의 경험을 이해하는 동시에 세상을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 책도 읽다가 엄청 찔렸다ㅋㅋㅋ

책 잘못 읽기 엄청 쉽고 함정에 빠지기도 쉬운데

내용을 현실로 보거나 책에서만 세상을 보거나 자신의 모습을 찾는 등 살아 있는 사람이 가상의 책에 잡아먹히기 쉽기 때문이다. 책이 더 넓은 세상을 보여준다고는 하지만 딱 책에 담긴 곳까지만이고, 역시 현실을 살아야 한다. 자아를 갖춘 인간이어야 하고, 책을 그대로 숭배하거나 자신을 굽혀선 제대로 읽지 못한다.

나는 온갖 함정에 다 빠졌었음ㅋㅋㅋㅋㅋ 젠장



언어와 말은 부정확하고 전달에 한계가 있기에 이해를 도우려 메타포(metaphor, 은유)를 쓴다. 이 메타포 중 오래된 것은 우주와 인간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의미를 읽으려는 방식으로 여러 학문이 생겨났다 말한다. '세상'을 책으로 보고 다가가는 '독자' 역시, 오래된 메타포 중 하나다.

저자는 오래된 비유로서 독자를 설명하고(삶은 한 권의 책, 삶은 사는 사람은 독자) 부류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의미 변천사와 부정적인 면을 설명한다. 

무턱대고 글자를 읽기만 하고, 책과 현실을 혼동하는 책벌레, 현실과 떨어져 책만 읽는 상아탑의 은둔자, 목적 없이 빈손으로 이동만 하는 여행자. 모두 책에 잡아먹혔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전자매체가 발달한다해도, 서로 언어를 통해 경험을 주고받으려 하는 건 변함이 없을 것이고, 은유와 상징은 현재하지 않고 손에 잡을 수 없는 것이라 해도, 거기에 매료되고 이해하려는 게 인간이 지닌 재능의 근본이기 때문에, 메타포도 사라지지 않고 쓰일 테니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진정으로 책을 읽으려면 세계를 담고 있지만 책은 책이고 현실에서 비롯된 비판적 시선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책도 단순히 얘기와 비유만이 아니라 현실을 냉철하게 내보여야 하겠지.


얼핏 보면 책이 뭘 말하려는지 잘 안 보이고 설명만 늘어놓은 것 같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보인다. 늘어지거나 기력이 없을 때 자세를 바로잡도록 중간중간 펼치기 좋은 책 같다.


햄릿은 책으로 세상을 배운 지식인이라는 관점이나, 보바리 부인의 엠마와 돈키호테, 안나 카레니나를 비교하는 부분이 무척 재밌었다.



상도 받았다는 전작 독서의 역사도 보고 싶은데 졸림ㄹㄹ

 


by 하완 오늘의 문구 2017. 9. 21.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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