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요하게 묵상하라


그러므로 말을 천천히 하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장소에는 천천히 가라. 말을 많이 하면 물이 쏟아지듯이 정신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온화하게 대함으로써 당신에게 이로운 소수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모임에 자주 방문할 권리를 얻어라. 그렇지만 지나친 친밀함은 우리를 목표에서 벗어나게 하므로 그들과도 너무 가깝게 지내는 것은 삼가라. 정신을 헛되이 사로잡는 소식을 좇지 마라. 도덕 혹은 앎과 전혀 관련이 없는 세상의 언행 때문에 분주히 움직이지 마라. 시간을 잡아먹고, 정신을 종잡을 수 없는 생각들로 채우는 쓸데없는 외출을 삼가라. 이런 것들이 신성한 일, 즉 고요한 묵상의 조건이다. 오직 이런 방식으로만 신성한 행복이라 할 수 있는 장엄한 비밀에 접근할 수 있다. 오직 이런 생활양식으로만 정중한 자세로 진리를 마주할 수 있다.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명확히 구별해야한다. …"무엇을 하려고 왔느냐?" 성 베르나르는 수도원 생활에 관해 스스로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사유하는 사람인 당신은 왜 평범함에서 벗어난 삶, 봉헌하고 집중하는 삶, 따라서 고독한 삶에 왔는가? 이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 아닌가? 당신은 하루하루가 거짓인 번잡한 삶보다, 심지어 귀족적이지만 대수롭지 않은 행실에 사로잡혀 사는 삶보다 진리를 선호하지 않았는가? 그럴진대 당신이 자유롭게 포기했던 것을 다시 움켜쥐는 방향으로 후퇴함으로써, 헌신하기로 결심한 대상에 충실하지 않을 작정인가?

은둔하지 않고서는 영감을 얻을 수 없다. 사유의 별들은 창공에 모여들듯 우리 머리 위에 걸린 등불의 동그란 빛 안으로 모여든다.

고요가 당신을 사로잡을 때, 소란스러운 인간의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때 성스러운 불꽃은 침묵 속에서 활활 타오른다. 평온한 질서, 즉 평화가 당신의 사유와 감정, 탐구를 정돈할 때 당신은 재료를 합칠 수 있고 창조할 수 있고 재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 그런 순간은 사소한 일을 하느라 머뭇거리거나 세월 속에 인생을 흘려보낼 순간이 아니며, 천국을 헐값에 팔아버릴 순간도 아니다.

고독 속에서 당신은 당신 자신을 만날 수 있고, 이것은 스스로를 이해하고 싶다면 꼭 필요한 일이다.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 몇가지를 되풀이하는 대신 저마다 고유한 언어를 말하는 신의 선지자가 되어라.



이 뒤로 고독과 친해져야 자기자신과 마주하고 진정한 자아를 펼칠수 있다 말한다.

마음이 가라앉는 좋은 말들이었음.

뒤 챕터도 계속 마음에 드는데 마음에 드는 부분을 올리려면 전부 다 쳐야할것 같아서 그만 둠

책 좋다. 

다만 성관념은 욕 나오기 때문에, 그 부분은 걸러봐야 한다.

(가끔 정신이 뛰어난 학자들도 성에 관한 개념은 쓰레기인 경우를 자주 보는데, 왜 그런지 진짜 이해가 안간다. 여자도 인간이고 사람인데 당연히 지성이 있잖아 근데 왜 자꾸 여자는 남자를 뒷받침해주는 보상이니 어쩌고 이딴 개소리하면 이딴 인간이 쓴 글을 내가 왜 읽나 싶고 책 전체를 의심하게 된다.)


사제가 쓴 책이라 그런지 절제를 강조한다. 그렇지만 그게 나랑은 잘 맞음

한동안 연락끊고 칩거했을때, 잠언을 찾고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스스로 짠 스케쥴을 엄격하게 즐기는걸 보고, 나는 꽤 수도사같은 면이 있군, 했었다. 그때 수도원 진짜 들어가고 싶어서 세례받는 방법 찾아보고 전국의 수도원을 검색하고;했었다. 지금도 수도원 들어가고 싶다, 문지기나 정원사, 필사가나...

조용히 공동체에 헌신하고 깨끗한 정신을 유지하는 삶을 바랬었다.

하여튼 신을 믿지 않아서 허튼 꿈이었지만.

절에도 들어가볼까 생각했는데, 절은 포기해야할게 더 많아서 떠올리자마자 관둠

내 생각이지만, 기독교는 어쩐지 변태같은...성격이 있는데, 그 점이 나랑 잘 맞는것 같음;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책장에 몇 권 더 있다.

이 출판사의 팬이 되어버릴것 같음

by 하완 오늘의 문구 2017. 5. 3.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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